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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오르기 전에 사람들은 이미 행동을 바꾼다 물가는 숫자로 발표되기 전에 이미 시장에서 먼저 움직인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는 결과일 뿐이고, 실제로 경제를 움직이는 건 물가에 대한 기대다. 이걸 물가 기대, 정확히는 기대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물가가 오를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행동을 바꾼다. 기업은 가격을 미리 올리고, 노동자는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 소비자는 지금 사두는 게 낫다고 판단한다. 이 모든 행동이 모이면 아직 오르지도 않은 물가가 실제로 오르게 된다. 물가 기대가 현실을 만들어버리는 구조다.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준금리를 올리면 당장 물가가 내려갈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의 기대가 바뀌지 않으면 효과는 제한적이다. 이미 오를 거라고 믿고 있는 상황에서는 금리가 조금 올라가도 소..
재정정책은 왜 항상 늦게 효과가 나타날까 경기가 나빠지면 정부는 늘 같은 말을 한다.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추경을 편성하고, 지원금을 풀고, 투자를 늘리겠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 느끼는 변화는 한참 뒤에 온다. 재정정책이 효과가 없어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정정책은 결정과 집행이 분리돼 있다. 정책 방향을 정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예산을 통과시키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 다음 실제로 돈이 집행되기까지 또 시간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이미 경기 국면은 한 단계 이상 지나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재정은 항상 뒤늦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하나의 문제는 재정이 들어가는 경로다. 정부 돈은 바로 소비로 가지 않는다. 대부분은 보조금, 인프라, 공공사업, 기업 지원 같은 형태로 흘러간다..
정부 부채는 왜 늘어나도 당장 문제처럼 보이지 않을까 경제 뉴스에서 국가 부채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분위기는 늘 비슷하다. 나라 빚이 늘었다, 미래 세대 부담이 커진다, 위험 신호라는 말이 반복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부채는 계속 늘어나는데 당장 경제가 무너지는 일은 잘 없다. 이건 정부 부채가 개인의 빚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부채는 상환 능력이 핵심이다. 소득이 줄어들면 바로 문제가 된다. 하지만 정부 부채는 구조가 다르다. 정부는 만기가 오면 갚는 주체가 아니라, 다시 빌릴 수 있는 주체다. 만기가 돌아오면 새로운 국채를 발행해 기존 채권을 상환한다. 이 과정이 가능하다는 전제만 유지되면 부채는 계속 굴러간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규모보다 신뢰다. 정부 부채가 문제가 되는 순간은 빚이 많아졌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빌려줄 사..
물가는 잡힌다는데 생활비는 왜 계속 비쌀까 뉴스를 보면 물가가 안정되고 있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물가상승률이 둔화됐고,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지났다는 표현도 반복된다. 그런데 막상 장을 보러 가면 체감은 전혀 다르다. 외식비, 식료품, 주거비는 여전히 비싸고, 내려갔다는 느낌이 거의 없다. 이 괴리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기준의 문제다. 우선 물가가 잡힌다는 말은 가격이 내려간다는 뜻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물가 안정은 상승 속도가 느려졌다는 의미다. 작년에 10% 오르던 가격이 올해 3% 올랐다면 통계상으로는 안정이다. 하지만 가격 수준 자체는 이미 올라가 있는 상태다. 개인이 느끼는 부담은 줄어들지 않는다. 특히 생활물가는 구조적으로 잘 내려오지 않는다. 인건비가 한 번 오르면 다시 내려가기 어렵고, 임대료 역시 계약 구조상 쉽게 조정되지..
가계부채가 줄지 않는 이유는 소비가 아니라 구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항상 나오는 말이 있다. 가계부채가 너무 많아서 문제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금리를 올리거나, 대출 규제를 강화하거나,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처방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가계부채는 잘 줄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가계부채의 원인이 소비가 아니라 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계부채를 개인의 과소비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통계를 보면 가계부채의 대부분은 소비가 아니라 주거와 자산에서 발생한다. 집을 사기 위해 빚을 지고, 전세를 구하기 위해 빚을 진다. 생활비 때문에 진 빚은 생각보다 비중이 크지 않다. 소득이 늘어나는 구조에서는 부채가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소득이 늘면 신용 한도가 늘고, 대출 가능 금액도 커진다. 이때 사람들은 미래 소득을 담보로 현재의 자..
거래량이 줄어드는데 주가가 버티는 시장은 왜 위험할까 주가가 오를 때 많은 사람들이 가격만 본다. 하지만 가격보다 먼저 봐야 할 게 거래량이다. 거래량은 시장에 실제로 돈이 얼마나 들어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주가가 오르는데 거래량이 줄어들고 있다면, 그 상승은 생각보다 불안정한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정상적인 상승장은 거래량이 함께 늘어난다. 새로운 매수 주체가 계속 들어와야 가격이 유지되고, 더 높은 가격도 받아들여진다. 거래량이 늘어난다는 건 그 가격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이때의 상승은 구조적으로 힘이 있다. 문제는 거래량이 줄어드는데도 주가가 버티거나 오르는 경우다. 이건 새로운 매수세가 유입돼서 오르는 게 아니라, 팔 사람이 없어서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기존 보유자들이 버티고 있을 뿐, 아래에서 받쳐주는 수요는 약하다. 이런 ..
배당주가 항상 안전한 투자라는 착각 주식시장이 불안해지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안이 배당주다. 주가가 흔들려도 배당은 나온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배당수익률이 높아 보이는 종목은 자연스럽게 안전한 자산처럼 인식된다. 하지만 배당주가 항상 안전하다는 생각은 상당 부분 착각에 가깝다. 배당은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 중 일부를 주주에게 나눠주는 행위다. 이 말은 배당이 미래가 아니라 과거의 결과라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 배당을 많이 준다는 건 과거 실적이 좋았다는 의미이지, 앞으로도 그 실적이 유지된다는 보장은 아니다. 그런데 개인 투자자들은 배당을 미래의 안정성처럼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배당수익률이 갑자기 높아진 종목은 조심해서 봐야 한다. 배당이 늘어서 수익률이 높아진 게 아니라, 주가가 먼저 빠졌기 때문에 수익률이 높아진 경우가..
PER이 낮은 주식이 항상 싼 주식은 아닌 이유 주식을 처음 시작하면 가장 먼저 보는 지표가 PER이다. 숫자가 낮으면 저평가, 높으면 고평가라고 배운다. 그래서 PER이 낮은 종목을 보면 왠지 안전해 보이고, 언젠가는 오를 것 같은 기대를 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PER이 낮은 주식이 오히려 더 안 오르는 경우가 많다. 이건 계산이 틀려서가 아니라 해석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PER은 현재 주가를 과거 혹은 예상 이익으로 나눈 값이다. 즉 지금 이익을 기준으로 미래를 단순히 연장한 숫자다. 문제는 주식시장이 과거를 거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장은 항상 앞으로 이익이 늘어날지, 줄어들지를 먼저 본다. PER이 낮다는 건 이익이 많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그 이익이 정점일 가능성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경기민감주다. 업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