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가는 숫자로 발표되기 전에 이미 시장에서 먼저 움직인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는 결과일 뿐이고, 실제로 경제를 움직이는 건 물가에 대한 기대다. 이걸 물가 기대, 정확히는 기대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물가가 오를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행동을 바꾼다. 기업은 가격을 미리 올리고, 노동자는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 소비자는 지금 사두는 게 낫다고 판단한다. 이 모든 행동이 모이면 아직 오르지도 않은 물가가 실제로 오르게 된다. 물가 기대가 현실을 만들어버리는 구조다.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준금리를 올리면 당장 물가가 내려갈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의 기대가 바뀌지 않으면 효과는 제한적이다. 이미 오를 거라고 믿고 있는 상황에서는 금리가 조금 올라가도 소비와 가격 결정 방식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숫자보다 메시지에 집착한다. 금리를 얼마나 올렸느냐보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신호를 더 강하게 준다. 시장이 이 신호를 믿어야 기대 인플레이션이 내려간다. 믿지 않으면 금리를 더 올릴 수밖에 없다.
이 구조는 임금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 노동자가 물가가 계속 오를 거라고 생각하면 높은 임금을 요구한다. 기업은 인건비 상승을 이유로 가격을 올린다. 그 결과 물가는 다시 오른다. 이걸 임금-물가 악순환이라고 한다. 한번 굴러가기 시작하면 멈추기 어렵다.
물가 기대가 무서운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물가가 아직 안정적일 때도 시장은 이미 불안해질 수 있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물가가 오르기 전에 선제적으로 움직이려 한다. 뒤늦게 대응하면 비용이 훨씬 커진다.
재미있는 건 물가 기대는 데이터보다 체감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장바구니 물가, 외식비, 전세금 같은 생활 물가가 오르면 사람들은 공식 수치와 상관없이 물가가 폭등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 체감이 기대를 만든다.

결국 물가를 잡는다는 건 숫자를 조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심리를 관리하는 문제에 가깝다. 신뢰가 깨지면 정책은 힘을 잃는다. 그래서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금도 아니고 외환보유액도 아니다. 시장이 그 말을 믿느냐가 전부다.
물가는 통계로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생각이 먼저 움직이고, 숫자는 그 뒤를 따라온다. 경제에서 기대가 현실이 되는 대표적인 영역이 바로 물가다. 이걸 이해하면 물가 뉴스가 훨씬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