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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정책은 왜 항상 늦게 효과가 나타날까

 

경기가 나빠지면 정부는 늘 같은 말을 한다.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추경을 편성하고, 지원금을 풀고, 투자를 늘리겠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 느끼는 변화는 한참 뒤에 온다. 재정정책이 효과가 없어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정정책은 결정과 집행이 분리돼 있다. 정책 방향을 정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예산을 통과시키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 다음 실제로 돈이 집행되기까지 또 시간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이미 경기 국면은 한 단계 이상 지나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재정은 항상 뒤늦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하나의 문제는 재정이 들어가는 경로다. 정부 돈은 바로 소비로 가지 않는다. 대부분은 보조금, 인프라, 공공사업, 기업 지원 같은 형태로 흘러간다. 이 자금이 다시 고용과 임금, 소비로 연결되기까지는 여러 단계를 거친다. 이 과정이 길수록 체감 효과는 더 늦어진다.

 

 

경기 하강 국면에서는 이 지연이 더 크게 느껴진다. 기업과 개인 모두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는 돈을 받아도 바로 쓰지 않는다. 기업은 투자를 미루고, 개인은 저축을 늘린다. 재정이 투입됐는데도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이유다. 정책은 집행됐지만 행동은 바뀌지 않는다.

 

반대로 경기 회복 국면에서는 재정이 과열을 키우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미 민간이 살아나기 시작한 시점에 재정이 본격적으로 풀리면, 물가와 자산 가격만 자극한다. 이때는 재정이 늦게 들어온 부작용이 더 크게 보인다. 타이밍이 어긋난 재정은 항상 논란이 된다.

 

그래서 재정정책의 평가는 늘 엇갈린다. 효과가 없다고 말하는 쪽과, 효과가 있었지만 늦게 나타났다고 말하는 쪽이 동시에 존재한다. 둘 다 틀리지 않다. 재정은 즉각적인 처방이 아니라, 흐름을 바꾸는 도구에 가깝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재정의 규모보다 방향이다. 어디에 쓰이느냐에 따라 효과의 속도와 지속성이 달라진다. 단기 소비를 자극하는 재정은 반응이 빠르지만 금방 사라진다. 생산성과 고용을 건드리는 재정은 느리지만 오래 간다. 문제는 정치적으로 빠른 효과가 더 선호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재정정책은 항상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만든다. 발표할 때는 크고 빠를 것처럼 보이지만, 체감은 느리고 제한적이다.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재정정책은 늘 실패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느리게 작동하는 게 정상이다.

 

재정은 만능 해법이 아니다. 위기를 완화할 수는 있지만, 구조를 바꾸지는 못한다. 재정정책을 볼 때 중요한 건 언제, 얼마나가 아니라, 어디로 가느냐다. 그래야 정책 뉴스가 단순한 기대나 실망이 아니라, 흐름으로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