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를 보면 항상 따라붙는 말이 있다. 비싸다, 보수적이다, 느리다. 실제로 삼성SDI의 PBR은 국내 2차전지 종목 중에서도 높은 편에 속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높은 PBR이 단순히 고평가의 결과로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삼성SDI는 공격적으로 증설하지 않는다. 경쟁사들이 수요를 앞서가며 공장을 늘릴 때도, 이 회사는 수주가 확인된 이후에 움직이는 쪽을 택해왔다. 그래서 매출 성장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리지만, 대신 자본 효율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이게 PBR에 그대로 반영된다.
PBR은 단순히 주가가 비싸다는 신호가 아니다. 시장이 그 기업의 자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삼성SDI의 경우, 장부에 찍힌 자본이 앞으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굴러갈 것인가에 대한 신뢰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뜻이다. 이 신뢰가 프리미엄으로 붙어 있다.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는 투자 규모다. 삼성SDI는 다른 2차전지 기업들에 비해 자본적지출이 과도하지 않다. 대규모 증설로 현금흐름을 압박하기보다는, 수익성이 확보되는 프로젝트 위주로 움직인다. 그 결과 잉여현금흐름의 변동성이 작고, 재무 구조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시장에서는 이런 기업을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답답해한다. 주가가 폭발적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PBR이 유지된다는 건, 적어도 시장이 이 회사의 자본을 깎아내리지는 않고 있다는 의미다. 기대가 과하지도 않고, 실망도 크지 않다.

삼성SDI를 성장주로만 보면 재미가 없다. 대신 자본을 어떻게 쓰는 회사인가라는 관점으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높은 PBR은 꿈을 판 결과라기보다, 절제된 경영에 대한 평가에 가깝다.
이 종목은 단기간에 시장을 흔들 주식은 아니다. 하지만 PBR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시장은 이미 이 회사를 느리지만 쉽게 망가지지 않는 구조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삼성SDI의 주가는 항상 이 프리미엄을 달고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